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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소말리아의 해적은 왜 생겨났을까

근처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예회 비슷한 행사를 열었을 때 가 본 적이 있다. 한 순서에서 1~3학년 아이들 20여 명이 무대에 늘어서서 노래를 불렀다. 소말리아 전통 민요라고 했다. 그 노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정말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같았다. 순진한 어린이들이 주저주저하며 조심스럽게 내는 목소리들은, 슬픈 듯 하면서도 흥겨운 가락과 잘 어울려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자아냈다. 그 장면을 녹화해 두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한동안 이 뜻도 모를 소말리어 노래의 조각들은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노래는 검색을 통해 찾아봤으나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소말리아에 관련한 소식을 들을 때면 항상 이 노래가 떠오른다. 물론 동시에 떠오르는 다른 장면도 있다. <포린 폴리시>에서 보았던, 내전으로 벌집이 된 건물 앞을 지나가는 모가디슈의 두 여인 모습이다.





한국인이 소말리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해적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관련한 배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되는 일이 잇달아 발생하고, 그 때문에 상선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청해부대를 파견한 일이 근래에 우리가 소말리아와 얽히게 된 계기들이다. 그 전에는 영화 <블랙 호크 다운>에 등장하는 소말리아 정도일까. 

국제 공인 '실패 국가'

소말리아는 국제 사회가 공인하는 실패 국가(failed state)다. 국가로서 기능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는 나라가 드물지는 않지만, 소말리아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포린 폴리시>가 지난 2010년 6월에 발표한 세계의 실패 국가 리스트에서 소말리아는 177개 국가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이래 3년째 1위다. 

소말리아에는 통치권을 행사하는 합법적 정부가 존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영향력이 거의 없으며, 치안 유지나 국민 보호, 사회 서비스 같은 국가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지배한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있긴 있지만, 정부의 통치력이 미치는 영토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한 수도 모가디슈의 몇 블록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통제가 되지 않는 군벌들이 나누어 장악하고 있다. 

폭력과 혼란이 질서와 안정을 대치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리고 소말리아에서 해적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내전과 혼란으로 인해 소말리아는 경제적으로도 최악이다. CIA의 World Factbook에 따르면 소말리아의 1인당 GDP는 약 600달러로 추정된다. 국민 한 명이 하루에 2천원도 벌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해적들은 다르다. 낮은 등급의 해적이라도 1년에 2만 달러 정도는 충분히 벌어들인다. 일반 국민의 소득보다 30배도 넘는 수입이다.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이 엘리트로 간주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09년에 소말리아가 해적 산업을 통해 벌어 들인 돈은 8천9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 해적 산업은 계속 확장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감행의 무모함에서도 그렇다. 아래 지도와 그래프를 보면 소말리아의 해적 산업이 연도 별로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소말리아의 해적은 2007년에 세계 전체 해적 사건의 17%에 지나지 않았다. 2009년에는 절반 이상이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도대체 아덴만과 인근해에서 왜 이렇게 해적이 활개치게 된 것일까. 우선 소말리아의 지리적 조건이 해적 산업에 유리하다는 점을 상기할 수 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 중에서 가장 긴 해안을 가진 나라다. 또 인근의 아라비아 반도 덕분에 코 앞을 지나는 배들의 수효도 많다. 소말리아 연근해를 왕래하는 배들은 한해 2만 척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한 마디로 '물 반 고기 반'의 황금 어장인 것이다. 물론 어업이 아니라 해적업의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점만으로 소말리아가 해적의 소굴이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이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소말리아의 해적을 대할 때 흔히 간과하거나 무시되는 점이기도 하고, 서구의 매체들이 애써 외면하는 점이기도 하다. 

외국 침탈에 대항하면서 시작된 해적 산업

1980년대에 내전이 시작된 이래, 소말리아에서는 제대로 된 단일 통치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주권을 수호할 강력한 권력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소말리아가 무주공산(無主空山)인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외국이 소말리아의 영토를 마음대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바다는 달랐다. 외국 배들은 주인이 없는 소말리아 영해를 마음대로 드나들며 물고기를 잡고 자국에서 처리하기 곤란한 독성 폐기물들을 쏟아 버렸다. 무주공해(無主空海)라고나 할까. 

과거에 소말리아에서 어업은 중요한 산업이었다. 소말리아 국민들은 전통적으로 해산물을 많이 소비하지 않으므로, 잡힌 해산물은 대부분 외국으로 수출되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들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소말리아의 어업에 투자하고 어족 자원을 확보하느라 경쟁했다. 

그러나 내전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면서 어업 인프라는 모두 깨지기 시작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외국 배들이 경제수역권 안에서 마음대로 고기를 잡고 폐기물을 쏟아 버리면서 고기가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전에 바쁜 정부는 이를 챙길 여유가 없었고, 해안 경비대도 없는 소말리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국제개발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04년에 외국 어선들이 소말리아 해역에서 불법으로 잡아 간 참치와 새우는 1억 달러어치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었다.

9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 어부들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바다를 스스로 지키러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체를 조직하고 어선을 AK로 무장했다. 그리고 자국 바다에서 불법 행위를 하는 외국 선박들을 응징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지금 국제적인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는 악명 높은 소말리아 해적의 출발이다. 해적 조직들이 '자원 해안 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자발적 해안 경비는 언젠가부터 공세적인 해적질로 바뀌었다. 고기를 잡는 것보다 사람을 잡는 편이 더 수익이 된다는 점을 소말리아 어부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소말리아 해안을 장악하고 있는 군벌들이 어민들의 해적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한 수익을 주요한 재원 확충 사업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보면, 대체 누가 해적인지, 누가 먼저 해적질을 시작했는지를 판단하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과거의 역사가 현재와 같은 무분별한 해적 비즈니스를 합리화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말리아에서 해적들이 발호하게 된 상황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이러한 이유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해적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말리아의 해안이 자국의 강력하고 합법적인 통치력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소말리아의 어족 자원을 외국의 침탈로부터 보호하고 동시에 해적을 일소할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말리아가 실패 국가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해적은 앞으로도 계속 발호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말리아 인근 해역을 움직이는 배들은 해적의 위험을 변수가 아닌 상수로 생각해야 하며, 한국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소말리아는 실패 국가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국제 정책의 무덤'이라는 딱지도 흔히 붙는다. 소말리아 내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모조리 실패했으며, 이제는 누구도 손대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말리아가 오늘날의 지경에 이른 것은 이렇게 외국들이 섣불리 개입하려다 실패한 탓도 크다. 

<포린 폴리시> 2009년 3월치에 게재된 기사는 소말리아가 왜 실패 국가가 되었는지, 이를 부채질한 측은 누구인지 잘 보여준다. 소말리아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기사인데, 원문이 상당히 길어서 접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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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가디슈 사진: 본문에 링크, 지도: 위키, 도표: <포린 폴리시>, 기사 저작권: <포린 폴리시> 및 포린폴리시코리아 (원문: Gettleman, J. (2009). The most dangerous place in the world. Foreign Policy, March/April 2009.)